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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좋은 교사도, 나쁜 학생도 없는 / 교사와 학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

 

클 래 스

 

 

감독: 로랑 캉테 / 영화감상평: 최복현


 

 

 

 

중학생, 괴물과 같은 아이들이라 지칭하는 중학생들이 활개 치는 교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교사는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행동할까? 아이들은 어떻게 교사를 대하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학생과 교사가 서로 마치 적이라도 되는 양 대립하고 있다면, 양측 사이엔 뭔가의 벽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벽보다 오히려 불편하게 하는 벽, 깰 수 없는 벽, 그 두꺼운 벽을 실감할 수 있는 영화다.

 중학교 교실, 그 중에서 2학년 3반 교사는 프랑수아다. 프랑수아 선생이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하나 학생들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선생을 선생으로 보지 않는다. 선생의 약점을 잡으려 들고, 말대꾸만 하려고 한다. 그러니 프랑수아는 속이 탈대로 탄다. 난감하다. 도무지 통제할 수 없다. 아이들이 자릴 비우면 의자들이 학생들을 대신하여 어지럽다. 같은 방향이 없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 댄다. 마치 무공해지역에 들뛰는 메뚜기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댄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 주로 수업 시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단순할 것 같은 교실, 별 이야기가 없을 것 같은 교실의 모습들이 긴장감을 더해준다. 뭔가 벌어질 것 같은 조짐이 상존한다. 그래도 더 이상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교사들이 울화통을 애써 참기 때문이다.

교사 프랑수아는 특출 난 교사는 아니다. 그저 평균적인 교사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면 조금 다르다 할까? 아이들이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짓궂게 장난을 쳐도 주눅 들지 않고 어떻게든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쳐보겠다 애쓰는 그런 정도의 교사, 그럼에도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려는 평균 정도의 교사다. 아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무능한 선생도 아니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들 사이엔 벽이 있다. 도무지 깨어지지 않는 벽이 있다. 그럼에도 프랑수아 선생은 끝없이 학생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벽을 어떻게든 깨보려 노력한다. 가장 보편적인 선생, 무능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그는 무척 힘들게 교사생활을 한다. 그는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자기가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쳐 보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그와 아이들 사이의 벽은 끝내 깨지지 않는다.

 

 

아무리 통제를 따르지 않아도 달리 제재할 방법도 없다. 매를 들 수도 없다. 험한 말을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가르쳐 봐야 알죠, 울화통 터지는 거....”란 교사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걸 참아내는 게 용하다. 꼬박 꼬박 말대꾸하고 비웃어 대는 아이들은 학생들은 “배워봐야 알죠. 말뿐이라는 거....” 서로 다른 생각, 학생과 교사의 벽, 학생들은 꼬박꼬박 대들고, 교사는 할 수 있는 통제수단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너무 지겹게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게 불만이다. 매로 다스렸다가는 큰일 나고, 그렇다고 욕을 하면 인권침해란 비난을 듣거나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가 어쩌다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 아이들의 특성을 알기 때문에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는데 어쩌다 한 마디 말실수를 했는데, 아이들이 꼬투리를 잡아 그를 괴롭힌다. 제법 가까워진다 싶었는데, 하필이면 한 아이를 퇴학 시켜야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학생들은 교사를 비웃는다. 그 일로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던 그의 반 학생들 중에서 한 학생은 결국 퇴학 처분을 받는다. 그러자 교사는 선생 노릇 못하겠다며 교사로서 회의감은 느낀다. 아이들은 이이들대로 ‘존경할만한 선생이라면 얼마든 존경할 것’이라고, ‘학생들이 교사의 말에 잘 따르지 않는 건 교사가 무능하기 때문이고, 믿을 수 없기 때문’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학생들과 교사는 그렇게 공존하긴 한다.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학교는 학교대로 존재하고 영화는 영화대로 특별한 해답 없이 스크린에서 점멸한다.

 

 

프랑스 학교 교실의 모습,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교라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의 교실 모습과 별반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부제가 벽 사이에서인 이 영화는 그다지 교실을 미화시키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나라 중학교의 현주소를 견주어 보면 참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중학생들이 주인인 교실, 그야말로 학생 수만큼의 문화가 상존한다. 그 문화의 충돌은 전쟁과도 같다. 이게 중학교 교실의 현주소다. 이 영화는 과장하거나 축소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로만 보면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교권 하락의 시대다. 어떤 이는 그럼에도 교사가 사랑을 베풀어주면,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면 다 해결된다고 한다. 하지만 난, 교생실습을 한 적이 있는 난, 자신이 없다.

이 영화를 보면 나는 정말 교사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 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한다는 건 신의 경지에 가까울 것 같아서다.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 교실도 이렇다면 나는 그 교사들이 참 존경스럽다. 그들의 인내심이, 그들의 지도 요령이 존경스럽다.

중학생들이 판치는 교실을 체험하지 못한 어른들이 보면 좋을 영화다. 우리 아이가 중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무조건 내 아이만 옹호할 수는 없을 테니까. 교사는 교사대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영화다. 교사라면 최소한 프랑수아 선생 정도는 되어야 평균은 갈 테니까. 물론 그 이상의 교사를 꿈꾸어야 할 것은 당연하다. 중학교 교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최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