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11. 11:38

카르페 디엠할 이유

 

죽은 시인의 사회

 

/ 최 복 현

 

 

존재에게는 길이 있다. 존재는 그 길을 만들며 간다. 파이프 연주, 교기를 든 학생들이 강당에 들어선다. 1859년에 창립된 명문 웰튼 고등학교의 새 학기 개강식이다.

"지식의 촛불을 켜십시오. 이 학교의 4대 원칙은 전통, 영예, 규율, 최고입니다."

명문학교임에 틀림없다. 75%가 명문대학에 진학한다니까. 그럼에도 그 우수한 학생들 중 한 그룹은 나름 4대원칙이 따로 있다. 이들은 저속, 공포, 퇴폐 등을 원칙으로 하는 죽은 시인의 사회란 그룹의 주동이 되는 학생들이이다. 이들은 틀에 매인 공부에서 벗어나려 한다. 어느 어른이든 이들을 응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따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다. 두뇌가 뛰어난 만큼 선생들을 은근히 골탕 먹이는 학생들, 이들의 적임자가 학교에 부임해 온다. 단 한 사람, 이들을 응원하며, 이들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장하게 하려는 이가 있으니, 키팅 선생이다. 그가 교과서를 박박 찢는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도 교과서를 찢어버리라고 한다. 굉장한 파격이다 

 

찢어버려라! 찢어 버려! 이건 교과서지. 성경이 아니야. 이런 걸 찢는다고, 지옥에 가진 않는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지? 찢어버려라! 이런 헛소리는 찢어버려라. 이건 전투다. 전쟁이다. 그 사상자는 바로 너희들의 마음과 영혼이다. 나의 수업에선 다른 사람이 평가한 걸 보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배워가는 거야! 이리 모여 봐. 우리는 공부를 위해 시를 읽고 쓰지 않는다. 우리가 시를 읽고 쓰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야. 의학, , 경영, 기계, 이런 것들은 우리인생에서 필요한 것이지. 삶을 지속해 나가는데.... 하지만 시, 아름다움, 로맨스, 사랑...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인거지.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봐야 한다.. 너희 앞에 책상을 밟고 올라가서 세상을 봐라.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거. 날 못 믿겠니? 직접 해봐. 어서... 여러분들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때. 바로 그 때 또 다른 방법으로 그걸 바라보아야 한다. 비록 바보스럽고, 틀린 것 같아도 시도를 해봐. 여러분들이 무언가를 읽을 때, 작가가 뭘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지마라.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걸 고려해라. 여러분들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도록 노력해라. 시작하는 게 늦을수록, 발견할 가능성은 더 적어지지. 그냥 받아들이지 마라. 그걸 깨고 나와라 우리는 모두 벌레들의 먹이에 불과하지... 제군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언젠가 호흡을 멈출 것이고, 차게 식어질 것이고, 죽을 것이기 때문이야.”

 

 

처음부터 학생들은 의아하다. 선생에게 끌린다. 웬만한 선생들이라면, 골탕의 대상으로 여겼던 아이들, 이 선생에겐 왠지 끌린다.

선생은 다시 아이들에게 나오라고 한다. 그리고 큰 사진, 학교를 빛낸 졸업생들의 졸업사진을 보게 하며 말을 잇는다.

, 이리 한걸음 나와서 이 옛날 사진을 봐. 이리로 나와서 과거의 얼굴들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자네들은 여러 번 이 사진들을 지나쳤지만 자세히 보지는 않았을 거야. 그들은 여러분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그렇지? 같은 머리모양, 여러분처럼 호르몬이 가득했지. 여러분들이 느끼는 것처럼 확신에 차 있었을 거구. 세상을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을 거야. 그들은 믿었어. 그들이 거대한 일을 하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사실을. 여러분들 중 다수가 그런 것처럼 그들의 눈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지. 하지만 그들은 기다렸어. 너무 늦어서 그들의 삶에서 아주 작은 것도 이룰 수 없을 때까지.”

선생은 학생들에게 그리스신화의 나르키소스를 예로 든다.

제군들! 이 소년들은 미루다 미루다가... 끝내는 수선화의 거름이 되고 있어. 죽어서 말이지...여러분들이 가까이서 들어본다면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여러분들에게 주는 유언을. . 기대봐. 들리나? 귀를 더 기울여 봐....어렴풋이 어딘가에서 들릴 것이다. 어렴풋이...

카르페. Carpe... 카르페 디엠.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지금을 잡아라... 바로 지금. 너희의 인생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펼쳐지고 있어... 듣고 있나? 여러분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바로 지금!”

 

 

선생의 교육법은 점점 더 나아간다.

자 올라와 봐, 여기서 보면 모든 게 달리 보여. 시란 관점을 바꾸는 거야. 관습적으로 보던 것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에서 보는 거라고. 자자 올라와!”

산만한 학생들에게 그는 학생들 앞에서 책상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책상에 올라오라 한다. 그는 영어 선생으로 부임하여 온 첫 수업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이 학교 출신이니까 물론 후배들이라 자신감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인간상이기 때문이다.

그가 즐겨 읽는 시는 휘트먼의 시들로, 그의 정신을 잘 드러내준다. 자연 그를 따르는 학생들 역시 휘트먼의 시를 애송한다.

 

 

 

나는 앉은 채로 세상의 모든 슬픔을 두루 본다. 온갖 고난과 치욕을 바라본다. 나는 스스로의 행위가 부끄러워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복받치는 아련한 흐느낌을 듣는다.

나는 어미가 짓눌린 삶 속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려 주저앉고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죽어감을 본다.

나는 아내가 지아비에게 학대받는 모습을 본다. 나는 젊은 아낙네를 꾀어내는 배신자를 본다.

나는 숨기려 해도 고개를 내미는 시새움과 보람 없는 사랑의 뭉클거림을 느끼며, 그것들의 모습을 땅위에서 본다.

나는 전쟁, 질병, 압제가 멋대로 벌이는 꼴을 본다. 순교자와 죄수를 본다. 뱃군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일에 목숨을 걸고 나설 차례를 정하려고 주사위를 굴리는 모습을 본다.

나는 오만한 인간이 노동자와 빈민과 흑인에게 던지는 경멸과 모욕을 본다. 이 모든 끝없는 비천과 아픔을 나는 앉은 채로 바라본다. 보고, 듣고, 침묵한다.

 

 

키팅 선생이 살고 싶은 삶, 제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삶을 잘 드러내주는 시가 이 시가 아닐까 싶다. 키팅은 시는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영혼을 해방시키려 한다. 관습에서, 점수에서, 편견에서, 이론에서,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학생들을 성장하게 하고 싶어 한다. 이들을 이를테면 진정한 시인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진정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진정한 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스스로 진정한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존재로 자신의 제자들이 자랐으면 한다. 새로운 날은 오지 않아도 새로운 날을 꿈꾸게 하고 싶다. 그는 시든 인생이든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사랑을 찾으려면 사랑을 찾을 용기를 갖게 하고 싶다.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자신만의 걸음을 찾게 하고 싶다. 그것은 어렵다. 남들의 눈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란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죽은 시인의 사회의 부활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arpe Diem! 즉 지금의 시간을 즐기라는 것이 키팅 선생의 신념이다. '오늘을 살라'고 역설하며 참다운 인생의 눈을 뜨게 하려 한다.

아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운동장에서 학생들에게 걷게 한다. 마음대로 걸으란다. 트랙을 정식으로 돌라는 게 아니라 걷고 싶은 대로 걸으란다.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머뭇거린다. 그러자 선생이 먼저 시범을 보인다.

걸어 봐. 내키는 대로 걸어 보라고..... 그래 넌 첨엔 마지못해 걸었어. 그리고 넌, 시키니까 걸었어. 넌 자발적으로 운동이 되니까 기꺼이 걸었어. 그런데 잠시 지나니까 모두 같은 방식이야. 걸음 걸이의 방향도, 속도도 같이 맞춰서 걸었잖아. 그냥 걸으라고, 자기 걸음을 찾아 걸라는 거였어.”

그는 자신을 선생이란 부름 대신 캡틴이라 불러 달라 한다. 캡틴, 그건 휘트먼의 시에서 따온 호칭이다. 의미로 볼 때 선장이란 의미다. 그는 그랬다. 그는 선장이었다. 드넓은 바다, 풍랑이 이는 바다의 작은 배를 호기 있게 끌고 나간 선장이었다. 그 안에 탄 선원들, 토드, , 녹스 등, 그들은 그의 진정한 선원이었고, 그는 그들의 선장이었다. 그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을 찾으려 했다. 어떤 아이는 사랑을, 어떤 아이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그 길을 열어가려 했다. 그게 험하고 허망하고 알 수 없는 해로를 그럼에도 즐겁게 헤쳐 갈 수 있는 방식이니까.

 

 

! 캡틴 나의 캡틴! / 휘트먼

 

아 선장이여, 나의 선장이여! 우리의 무서운 항해는 끝났습니다.

배는 갖은 난관을 뚫고, 우리가 추구했던 바를 쟁취했습니다.

항구는 가까워지고 종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옵니다.

사람들은 든든한 선체에 눈길을 모읍니다. 웅장하고 엄숙한 그 배에.

그러나 아, 심장이여! 심장이여! 심장이여!

,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 방울이여,

싸늘하게 죽어 누워있는

우리 선장의 쓰러진 갑판 위에.

, 선장이여! 나의 선장이여! 일어나서 저 종소리를 들으시오.

일어나시라, 깃발은 당신을 위해 펄럭이고 나팔은 당신을 위해 울리고 있어요

꽃다발과 리본으로 장식한 화환도 당신을 위한 것

-당신을 위해 해안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

그들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어요.

동요하는 무리의 진지한 얼굴과 얼굴.

, 선장이여! 사랑하는 아버지여!

내 팔을 당신의 머리 아래에 놓아요!

이것은 꿈입니다. 갑판 위에

당신이 싸늘하게 죽어 쓰러집니다.

나의 선장은 대답이 없고 그 입술은 창백하여 움직이지 않네.

아버지는 내 팔을 느끼지 못하고 맥박도 의지도 없으시네.

배는 안전하게 닻을 내렸고 항해는 끝이 났습니다.

무서운 항해에서 승리의 배는 쟁취한 물건을 싣고 돌아옵니다.

아 환호하라 해안이여! 울려라 종이여!

그러나 나는 슬픈 발걸음으로 쓰러져 누워

갑판을 걷는다, 우리의 선장이 잠든 곳을.

 

 

해서 그들은 그들의 선장이 살아왔던 모습을 따라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만든다. 거기서 해방구를 찾는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특히 그의 제자 닐은 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음에도 그것을 마음껏 할 수 없다. 그래서 닐은 어른들에게, 자기의 길을 막은 이에게 복수를 한다. 바로 아버지의 물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들만의 클럽도 문을 닫는다. 키팅 선생의 그 배는 좌초한 것일까.

 

앞줄에 섰던 이를 뒤로 보내라 뒷줄에 있던 이를 앞으로 나가게 하라 고집통이, 얼간이, 때묻은 이들로 하여 새 제안을 내도록 하고 낡은 제안은 뒤로 미루고

사나이로 하여 자기 자신이 아닌 도처에서 기쁨을 찾게 하라.

계집으로 하여 자기 자신이 아닌 도처에서 기쁨을 찾게 하라.

 

같은 배에 타고도 생각은 각기 다르다. 지레 착한 아이가 되어 보겠다고 배반의 길을 간 아이 카메론, 어른들의 협박에 굴하여 스승을 배신해야만 했던 아이들이다. 그 배에는 예수 시대처럼 나약한 베드로 일당, 배신자 유다 등이 타고 있었다. 그럼에도 키팅 선생이 떠나는 때에 한 아이의 용기로 시작된 진정한 반항은 자신들의 캡틴을 다시 부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실이며 정의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아이들로, 눈을 뜰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키팅, 그는 진정한 캡틴이었다. 다시 부상하는 작지만 단단한 배의 선장이었다.

 

 

“‘카르페디엠오늘을 잡아라, 장미가 피었을 때 장미를 따라. 기회를 놓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누구나 어느 날인가는 숨이 멎고 죽어갈 테니까. 그러니까 오늘을 잡아라. 여기에는 사랑도 예외는 아니고 하고 싶은 일도 예외는 아니다.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녹스는 사랑을 위해 지금 나서야 하고 지금 시도해야 하고, 지금 고백해야 하고, 지금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얻어맞고 깨지면 어때. 기회를 놓치고 아무 시도도 못 해보는 것보다는 그게 나은 거지.

, 연극을 좋아한다면 누가 방해 하더라도 해 보는 거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뭐냐고. 그건 시, 아름다움, 사랑, 낭만 때문이야.”

키팅 선생의 교육법, 파격적이라고 생각할 교육법, 자유로운 인간, 진정한 인문학적 인간을 기르는 교육 방법임엔 틀림없는데, 그의 교육방법을 받아들일 환경이 아니다. 때문에 그 방식은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사회의 벽이 선입견의 벽이 관습의 벽이 너무 두껍고 높다.

그래서 닐은 자기 가면을 벗고 솔직해지려 했지만 아버지 앞에만 서면 더 이상 반발을 하지 못하는 순한 양에 불과했으니, 그는 이제 죽은 시인의 사회로 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선생이 꿈꾸었고, 그들이 배웠던 자유로운 이상, 누군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며 삶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어른들이 그어 놓은 세상엔 없다. 때문에 학생들을 그들만의 공간을 찾는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아지트, 그들만의 동굴로 간다.

 

 

죽은 시인의 사회이 세상엔 이제 살아 있는 시인의 사회는 발을 붙일 수 없다. 단지 있다면 꿈속에서만 자유로울 뿐이다. 그러니 진정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그러니 그 세계를 어디서 찾을까. 그들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동굴로 간다. 그 공간만이 살아 있는 시인들의 살 수 있는 사회니까. 언어의 목적이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든 아니든, 사랑은 삶의 의미로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 소중한 가치를 미래의 투자라는 명목으로, 점수라는 명목으로 억눌러야 할 뿐이니까.

진정한 삶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이니까. 그것을 위해 새로운 관점을 찾아 자유를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낭만을 노래해야 하니까. 순응하지 말고 자유롭게 걸어라. 진정한 삶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리고 순응의 위험성을 버리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리라.

 

 

이 영화는 학교의 진정한 역할, 어른들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학교의 역할, 그건 점수 따기 기계, 오직 대학에 또는 명문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진학시키느냐를 교사의 능력, 학교의 수준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반성하게 하는 좋은 영화다. 오래 전에 만든 영화지만 거기에 희생당하는 아이들, 끝내는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건까지 가져오게 만드는 어른들, 그 어른들은 다름 아닌 학교의 사람들이며, 그 부모가 공범이라는 점이다.

틀에 짜인 그 안에서 버둥거리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몸부림이 애달프다. 언제까지 이들의 그 움트는 속 씨를 누를 수 있을까, 이대로 눌러주면 어른이 될 때까지 운 좋으면 가능할 것이다. 그 다음 어른이 되어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지 못하면 학교는 그 학교로서의 역할을 다 한 것이며,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일까. 아예 서서히 스스로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의 길을 선택하고 찾아 가게 하는 게 나은 게 아닐까?

제군들! 귀를 더 기울여 봐. 어렴풋이 어딘가에서 들릴 것이다. 어렴풋이. 카르페 디엠.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지금을 잡아라... 바로 지금. 너희의 인생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펼쳐지고 있어... 듣고 있나? 여러분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바로 지금!” 

 

   -최복현-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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