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7 09:21

좋은 교사도, 나쁜 학생도 없는 / 교사와 학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

 

클 래 스

 

 

감독: 로랑 캉테 / 영화감상평: 최복현


 

 

 

 

중학생, 괴물과 같은 아이들이라 지칭하는 중학생들이 활개 치는 교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교사는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행동할까? 아이들은 어떻게 교사를 대하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학생과 교사가 서로 마치 적이라도 되는 양 대립하고 있다면, 양측 사이엔 뭔가의 벽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벽보다 오히려 불편하게 하는 벽, 깰 수 없는 벽, 그 두꺼운 벽을 실감할 수 있는 영화다.

 중학교 교실, 그 중에서 2학년 3반 교사는 프랑수아다. 프랑수아 선생이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하나 학생들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선생을 선생으로 보지 않는다. 선생의 약점을 잡으려 들고, 말대꾸만 하려고 한다. 그러니 프랑수아는 속이 탈대로 탄다. 난감하다. 도무지 통제할 수 없다. 아이들이 자릴 비우면 의자들이 학생들을 대신하여 어지럽다. 같은 방향이 없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 댄다. 마치 무공해지역에 들뛰는 메뚜기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댄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 주로 수업 시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단순할 것 같은 교실, 별 이야기가 없을 것 같은 교실의 모습들이 긴장감을 더해준다. 뭔가 벌어질 것 같은 조짐이 상존한다. 그래도 더 이상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교사들이 울화통을 애써 참기 때문이다.

교사 프랑수아는 특출 난 교사는 아니다. 그저 평균적인 교사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면 조금 다르다 할까? 아이들이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짓궂게 장난을 쳐도 주눅 들지 않고 어떻게든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쳐보겠다 애쓰는 그런 정도의 교사, 그럼에도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려는 평균 정도의 교사다. 아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무능한 선생도 아니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들 사이엔 벽이 있다. 도무지 깨어지지 않는 벽이 있다. 그럼에도 프랑수아 선생은 끝없이 학생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벽을 어떻게든 깨보려 노력한다. 가장 보편적인 선생, 무능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그는 무척 힘들게 교사생활을 한다. 그는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자기가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쳐 보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그와 아이들 사이의 벽은 끝내 깨지지 않는다.

 

 

아무리 통제를 따르지 않아도 달리 제재할 방법도 없다. 매를 들 수도 없다. 험한 말을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가르쳐 봐야 알죠, 울화통 터지는 거....”란 교사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걸 참아내는 게 용하다. 꼬박 꼬박 말대꾸하고 비웃어 대는 아이들은 학생들은 “배워봐야 알죠. 말뿐이라는 거....” 서로 다른 생각, 학생과 교사의 벽, 학생들은 꼬박꼬박 대들고, 교사는 할 수 있는 통제수단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너무 지겹게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게 불만이다. 매로 다스렸다가는 큰일 나고, 그렇다고 욕을 하면 인권침해란 비난을 듣거나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가 어쩌다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 아이들의 특성을 알기 때문에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는데 어쩌다 한 마디 말실수를 했는데, 아이들이 꼬투리를 잡아 그를 괴롭힌다. 제법 가까워진다 싶었는데, 하필이면 한 아이를 퇴학 시켜야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학생들은 교사를 비웃는다. 그 일로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던 그의 반 학생들 중에서 한 학생은 결국 퇴학 처분을 받는다. 그러자 교사는 선생 노릇 못하겠다며 교사로서 회의감은 느낀다. 아이들은 이이들대로 ‘존경할만한 선생이라면 얼마든 존경할 것’이라고, ‘학생들이 교사의 말에 잘 따르지 않는 건 교사가 무능하기 때문이고, 믿을 수 없기 때문’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학생들과 교사는 그렇게 공존하긴 한다.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학교는 학교대로 존재하고 영화는 영화대로 특별한 해답 없이 스크린에서 점멸한다.

 

 

프랑스 학교 교실의 모습,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교라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의 교실 모습과 별반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부제가 벽 사이에서인 이 영화는 그다지 교실을 미화시키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나라 중학교의 현주소를 견주어 보면 참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중학생들이 주인인 교실, 그야말로 학생 수만큼의 문화가 상존한다. 그 문화의 충돌은 전쟁과도 같다. 이게 중학교 교실의 현주소다. 이 영화는 과장하거나 축소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로만 보면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교권 하락의 시대다. 어떤 이는 그럼에도 교사가 사랑을 베풀어주면,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면 다 해결된다고 한다. 하지만 난, 교생실습을 한 적이 있는 난, 자신이 없다.

이 영화를 보면 나는 정말 교사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 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한다는 건 신의 경지에 가까울 것 같아서다.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 교실도 이렇다면 나는 그 교사들이 참 존경스럽다. 그들의 인내심이, 그들의 지도 요령이 존경스럽다.

중학생들이 판치는 교실을 체험하지 못한 어른들이 보면 좋을 영화다. 우리 아이가 중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무조건 내 아이만 옹호할 수는 없을 테니까. 교사는 교사대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영화다. 교사라면 최소한 프랑수아 선생 정도는 되어야 평균은 갈 테니까. 물론 그 이상의 교사를 꿈꾸어야 할 것은 당연하다. 중학교 교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최복현-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8.12.26 17:27
2018.12.26 14:38
2018.12.22 20:32

20181222꿈이음 청소년 크리스마스 파자마 파티

 

꿈이음 청소년 산타프로그램 진행 후 청소년들도 서로 축하해주고 재밌게 놀 수 있는 축제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여 꿈 원정대 파티시엘 진로 동아리 김소은친구가 꿈이음 청소년 크리스마스 파자마 파티를 약 2주간 기획하였습니다.

 

이번 축제 대상은 꿈이음 청소년 산타를 참여한 청소년들 및 꿈원정대 동아리 약 20명이 함께하였습니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는 김소은 친구가 준비해온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몸으로 말해요’, ‘노래 맞추기’, ‘복불복 게임’, ‘상식 퀴즈’, ‘영화 이름 맞추기’, ‘스피드 퀴즈’, ‘당연하지’, ‘진실게임을 진행하였습니다.

 

김소은 친구는 몇 주 동안 장장 긴 시간이 넘는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지켜보면서 참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크레이션 진행을 1시간~ 2시간 정도면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기획 회의 때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지 말고 아껴서 진행하는 것이 어떨지 이야기 했었는데...)

이후 저녁 프로그램으로 6시부터 8시까지는 집으로라는 영화를 함께 시청하였습니다.

 

이번 꿈이음 청소년 크리스마스 파자마 파티의 드레스코드는 파자마(잠옷)’으로 잡았는데 기획의도는 꿈이음 공간에서 편안하게 즐겁게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8.12.22 12:46

 

 

 

 

 

 

꿈이음원정대청소년들은 21, 홍천내 아동청소년 유관기관 및 시설 40여곳을 방문하여 꿈이음 청소년 산타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는 요리 동아리~파티시엘등 꿈원정대 청소년들이 한 해 동안 배우고 익힌 재능을 지역의 축제 및 행사에 참가하여 창출한 수익금과 자발적 모은 기금으로 직접 케익을 만들고 감사의 편지를 담아청소년산타가 되어 아동청소년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갖고 응원해준 유관기관에 감사와 희망의 마음을 전달 하였습니다.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8.12.21 18:55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8.12.21 18:37
2018.12.21 14:31

감사와 희망을 전달하는

꿈이음 청소년 산타

 

 

                   

 

꿈이음원정대청소년들은 21, 홍천내 아동청소년 유관기관 및 시설 40여곳을 방문하여 꿈이음 청소년 산타행사를 펼친다.

 

이번 행사는 요리 동아리~파티시엘등 꿈원정대 청소년들이 한 해 동안 배우고 익힌 재능을 지역의 축제 및 행사에 참가하여 창출한 수익금과 자발적 모은 기금으로 직접 케익을 만들고 감사의 편지를 담아청소년산타가 되어 아동청소년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갖고 응원해준 유관기관에 감사와 희망의 마음을 전달한다.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8.12.21 14:28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저자: 사토 마나부/ 북코리아 출판

 

 

공부와 배움의 차이

"공부는 끊임없이 끝을 알리는 것 ", 배움은 끊임없이 시작을 준비하는 것"

 

사토 마나부는 공부와 배움의 차이는 '만남과 대화'의 유무에있다고 말하면서 공부가 무엇과도 만나지 않고 아무런 대화도 없이 수행되는 것에 비해, '배움'은 사물이나 사람이나 사항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며, 타자와의 사고나 감정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고, 자기자신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배움을 위하여

저자는 아이들의 학력향상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창조적, 탐구적인 배움의 주체로 키워야 한다.그리고 아이들을 배움의 주체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나 교사가 배움의 주체로 성장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목차

1.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1. 만들어지는 위기와 무시되는 실태
  2. 위기의 실태 - 배움으로부터의 도주
  3. 학력저하의 진상
  4. 공부시대의 끝 = 동아시아형 교육의 종언
  5. 사회변모와 교육개혁의 실패
  6. 공부로부터 배움으로

2. 학력을 묻는다 - 배움의 교육과정
  1. 학력문제의 혼란
  2. 학력의 실태 - 무엇이 문제인가
  3. 위기의 배경 - 학력신화의 붕괴
  4. 기초학력의 복고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5. 수준별 학습지도, 소집단지도는 유효한가
  6. 아이들의 배움을 위하여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8.12.20 09:22

열 번을 봐도 더 보고 싶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최복현

 

 

 

“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이 될 것이다.”

평범하지 않게 살겠다는 것, 남다르게 살겠다는 것, 그것은 쉽지 않다. 이렇게 남다르게 사는 사람, 평범하지 않은 사람, 이들을 가리켜 이방인이라고, 아웃사이더라고 부른다. 부정적으로는 미친놈 또는 또라이 소리 듣기 딱 좋다. 사회는 그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의 진보를 이끄는 건, 세상을 바꾸는 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건, 그들의 몫이다.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 적응하기 어렵다. 소위 부적응자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부적응자, 때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진한 감동을 주는 이들은 그들이다. 아웃사이더들이다. 나와 그들이 가까이 있으면 나는 그들을 비웃거나 손가락질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나와 멀리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흥미를 가지고 바라본다. 나와 같은 심리 덕분에 그들 중 어쩌다 한두 명은 영웅이 되고, 전설이 된다. 이들에게 우리는 찬사를 보낸다. 박수를 보낸다.

보헤미안 랩소디, 집시들의 광시곡? 그래, 제목만으로는 어디 거칠 것 없이 떠도는 이들의 자유로움이 배어나오는 노래겠다, 노래가 아주 열정적이겠다 싶다. 자유로움과 뜨거움, 이 영화는 그렇다. 그렇다고 대중과 먼 음악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찰떡궁합의 음악이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너무 황홀하고 너무 신나고 너무 마음에 와 닿는 음악이다. 가수와 관객이, 밴드와 관객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하늘이 내린 음악이랄까!

 

보헤미아Bohemia은 일반적으로 사회의 관습이나 규율 등을 무시하고 방랑적이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사람, 즉 집시를 일컫는다. 원래는 체코의 서부 지방 보헤미아 출신 사람을 의미한다. 지방 이름은 보헤미아, 이 단어에 사람이란 접미사를 붙여 보헤미안이란 프랑스어식 표현이다. 보헤미아 지방 사람들은 경쾌한 춤을 즐겼는데, 프랑스인들은 춤과 노래를 즐기는 집시들이 보헤미아 지방 출신으로 알고 그들을 가리켜 보헤미안이라 붙인 게 유래다. 실제 보헤미아 인들은 집시처럼 떠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랩소디Rhapsody’는 주로 음악용어로 쓰인다. 주로 서사적·영웅적·민족적 성격을 갖는 환상풍의 자유로운 그리고 즉흥적인 기악곡을 가리키며 우리말로 광시곡이다. 즉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발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민자 출신 파록 버사라는 파키스탄 인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튀어나온 이에다 이민자 출신으로 사회의 냉대를 받으며 그는 공항의 수하물을 다루는 노동자로 생활한다. 그의 아버지는 기독교 출신이 아닌 조로아스터교 교인으로 항상 그에게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을 할 것을 강요한다.

비록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지만 자신은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파록 버사라, 그가 어느 날 우연히 백화점 여성복 코너를 운영하는 메리를 만난다. 첫눈에 호감이 간다. 서로 통성명만 하지만 눈빛은 서로 통한다.

어느 날 그는 소규모 클럽에 들어갔다가 생음악을 하는 로컬 그룹과 조우한다. 나중에 그들을 직접 찾아간다. 그들은 마침 보컬이 없어서 해체위기다. 그는 자신을 보컬로 쓰라고 호기를 부린다. 그걸 인연으로 그는 로컬 그룹의 보컬로 활동한다. 메리의 여성복 코너에서 여성 옷으로 분장하고 그때부터 여성스럽게 꾸미고 음악활동을 한다. 그가 참여하면서 그들의 밴드는 <퀸, 프레디 머큐리>로 이름을 바꾼다. 이제 그의 이름은 프레디 머큐리로 세상에 선보이면서 그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다. 제목처럼 즉흥적이며 자유로운 발상으로 그의 노래는 보편성을 넘어선다. 덕분에 지역에서는 제법 알려진다. 넉넉하게 생활할 정도는 아니지만 근근이 음악으로 생활할 만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 프레디 머큐리의 제안으로 그들이 이동수단으로 삼던 밴을 판다. 그 돈으로 그들은 음반을 내기로 한다. 모험이 없이는 지금보다 나은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생각한 것이다. 그의 뒤에는 그를 응원하는 메리가 있다. 그의 화려한 의상은 메리의 조언과 아이디어가 따른다. 하지만 그는 가족으로부터는 철저히 외면 받는다, 독실한 조로아스터교도인 아버지는 그가 추구하는 음악을 사탄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은 오히려 메리와 그와 함께하는 밴드친구들이다.

그리고 1년 후, 자신을 저버리면 성공할 수 없다는 철학의 프레디의 고집대로 그들만의 개성으로 그들의 음악성은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게 드디어 엘튼 존의 매니저가 접근한다. 메니저에게 그는 ‘부적응자들을 위한 부적응자의 노래, 마음 쉴 곳 없는 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겠단다. 그들의 데뷔는 성공적이어서 BBC방송에 비록 립싱크이긴 하지만 출연 기회까지 얻는다. 그걸 기점으로 그들은 대단한 호응을 얻는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우선 즉흥적이며 자유롭다. 덕분에 어느 무대에서든 관객의 호응을 금방 이끌어낸다. 게다가 그의 그러한 재능은 무대를 지배하고도 남는다. 관객과 가수가 한 몸이 되는 듯한 분위기, 화려한 퍼포먼스, 밴드 퀸의 인기는 날로 높아간다.

음악에서의 성공과 함께 그와 메리의 사랑도 무르익는다. 메리가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큰 무대에서 잘할 수 있는지 묻자 그는 무대에 서면 늘 자신이 꿈꾸던 무대여서 틀릴 수가 없단다. 그러니까 그는 철저히 무대체질인 셈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메리에게 반지를 건네며 프러포즈를 한다. 죽는 날까지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하면서.

 

그들의 사랑의 2라운드가 넘어서는 순간 둘은 마음은 함께 있어도 몸은 나누어진다. 그의 밴드는 미국 공연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기는 날로 뜨거워지면서 미국 전역을 누비다시피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메리와 전화로 사랑을 고백하며 진정한 사랑을 전한다. 그럼에도 그는 늘 여성취향의 옷을 입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깨닫는다. 메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밴드 내의 남자들과 진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그는 사랑의 불안을 느낀다. 그때쯤 그가 만든 노래는 그의 불안을 예고한다.

 

Love of my life, you've hurt me You've broken my heart, and now you leave me

Love of my life, can't you see Bring it back, bring it back, don't take it away from me

Because you don't know what it means to me Love of my life, don't leave me

내 삶의 사랑아, 너는 나를 아프게 했어. 너는 내 마음을 산산조각 부수었고, 지금은 넌 날 떠나잖아. 내 삶의 사랑이여, 너는 볼 수 없니? 돌아와 줘. 나에게서 빼앗아 가지 마. 너는 그게 나한테 무슨 의미인지 모르니까, 내 삶의 사랑아, 날 떠나가면 안 돼.

 

메리는 그를 여전히 사랑함에도 그가 느낀 불안, 양성을 모도 사랑하는 그를 메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들의 미국 공연을 가는 데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자 그들에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마이애미 상에서 음반제작의뢰가 온다. 그렇게 시작한 그들의 새로운 음반 만들기, 그때 탄생한 곡이 <보헤미안 랩소디>이다. 6분이나 되는 분량의 곡이다. 그걸 만들면서도 대화는 왠지 불안하다. 밴드는 망하는 것보다 깨지는 게 쉽다든가, 모두 다 떠나고 진실을 빼앗기고 망할지는 모르지만 이라면서도 그들은 서로의 재능을 모아 특이한 곡을 만든다. 여러 장르의 혼합이다. 갈릴레오, 레오, 관객과 함께하는 쿵쿵 짝 등. 나름 신선하다. 그러나 음반을 의뢰한 제작사 사장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6분이란 시간 때문에 그걸 틀어줄 방송은 없다는 판단이다. 그들은 ‘공식을 반복하는 건 의미가 없다’ 며 자존심을 내세운다. 한 사람으로 규정되지 않는 음악을 이들은 추구한다. 그 중심엔 프레디 머큐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음악을 만들 때 각자의 재능과 각자의 취향을 서로 논의하여 녹여 넣는다. 사장은 공식이 좋다고 한다. 그들은 용감한 자에게 행운이 따른다는 믿음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 이것이 이들 음악의 3라운드를 여는 계기일 것이다. 그것이 순탄하든 고통이든.

일단 브레이크가 걸린 음악행진, 메리와의 사랑에도 이상신호가 온다. 메리가 미국에 건너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은 서로 다른 방을 쓴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의 방을 건너다보면서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며 전화로만 사랑을 나눈다. 당연히 그것은 갈등을 야기한다. 결국 그는 메리에게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고백한다. 메리에게 용서해달라고 하자, 메리는 그건 프레디의 잘못은 아니어서 더 힘들다고 한다. 그때부터 프레디 머큐리는 복장을 남성 형으로 바꾼다. 머리도 이제는 더는 기르지 않고 남자답게 자른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기는 올랐지만, 마음대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을 할 수 없는 좌절감 같은 것,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 때문에 그들은 술과 마약으로 도피한다. 방탕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는 예감한다. 절제 없는 생활의 연속, 그들 사이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특히 프레디 머큐리는 동료들로부터 뜨거운 눈총을 받기 시작한다. 그가 황제 노릇을 하며 술집에서 주접을 떨자 그의 동료들은 모두 자리를 뜬다. 남은 이는 고용인과 둘, 그가 지나치는 고용인 짐 머튼의 엉덩이를 툭 친다. 남자가 화를 낸다. 나중에 술에 취한 그를 차마 그냥 두지 못하고 다가온 짐 머튼은 이제 고용인 그만 두겠다면서 그에게 키스한다. 진한 키스 후 그는 프레디 머큐리에게 “자신을 좋아할 결심이 생기면 찾아와요.”라며 자리를 뜬다. 그의 황제 시절, 팬으로부터는 대단한 인기를 얻지만 그는 점점 자신 속으로 숨는다. 고독하다. 외롭다. 스스로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 시절의 끔찍한 자신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 we will rock you다.

 

Buddy you're a boy make a big noise Playin' in the street gonna be a big man some day

You got mud on yo' face You big disgrace Kickin' your can all over the place Singin'

We will we will rock you We will we will rock you

Buddy you're a young man hard man Shoutin' in the street gonna take on the world some day You got blood on yo' face You big disgrace Wavin' your banner all over the place

친구 자넨 지금 소년이야. 거리에서 소란을 떨면서 놀면서 언젠가는 거물이 될 거라고 하지.

네 얼굴에 진흙이 묻었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온 동네에서 깡통을 차고 돌아다니는 주제에.

소리 질러. 우리는 널 흔들 거야. 우리는 널 흔들 거야.

친구 자넨 이제 젊고 강한 남자야.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언젠가 세상에 도전할 거라고 하지.

네 얼굴은 피투성이야. 부끄러운 줄 알아. 온 동네에서 네 깃발을 휘두르고 다니는 주제에.

 

음악을 하면서도 그는 사랑이 그립다. 그는 이 남자 저 남자를 넘나들면서도 메리가 그립다. 그러던 어느 날 메리가 그를 찾아온다. 그런데 메리의 옆에 훤칠한 남자가 있다. 데이빗이다. 프레디는 그녀의 손가락을 확인한다. 그의 반지가 없다. 그가 양성애자 고백을 했을 때 메리가 반지를 돌려주었으나 다시 끼워준 반지를 메리는 뺀 것이다. 그녀는 “내게 필요한 게 뭔지 알았어.”라고 말한다. 메리가 떠난다. 그는 아프다. 아파하는 그에게 그의 동성 사랑 폴이 “이제 내가 도와줄게. 네가 나를 믿는다면......”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힘든 일들의 연속이지만 그의 천재성은 인정받아 세인들이 그에게 접근한다. 굉장한 조건으로 그에게 솔로로 나설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그는 그걸 거절한다. 그의 진정한 가족은 밴드 멤버들이라며.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다다른다. 밴드 규모가 커지면서 운영비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호화생활을 하려니 어렵다. 결국 그는 밴드에 참여하면서 솔로로 취입을 선언한다. 때문에 그는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을 찍히고 폴과 둘만 남는다. 그러면서 모든 일정을 폴이 관리한다. 메리한테서 전화가 와도 폴은 연결을 안 시킨다. 또한 라이브 에이드란 대형 콘서트에 참여하라는 전 매니저의 제안도 폴은 프레디에게 말하지 않는다. 폴의 관리로 그는 완전 고립당하지만 그는 그걸 모른다.

게다가 그에게 모욕을 당한 동업자가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과 그의 광적이며 방탕한 사생활을 폭로한다. 그러자 기자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그에게 답을 요구한다. 밴드 식구들로부터의 고립, 메리와의 사랑의 두절, 그는 심한 우울감에 빠진다. 이제 마지막 라운드 돌입이다.

 

메리가 찾아온다. 임신한 그녀를 보니 그는 영 기분이 안 좋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니?”라는 물음에 메리는 여러 번 연락을 취했었는데 전화를 안 받았느냐고 오히려 책망한다. 그는 비에 흠뻑 젖는다. 메리가 그에게 말한다. “너는 지금 폴에게 속고 있어. 집으로 돌아와 줘.”라고. 메리를 통해 진실을 알고 난 그는 폴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그를 당장에 해고한다. 해고당한 폴은 방송에 나가서 그를 비난한다. 혼자될까 두려워 숨는 사람이라며 그를 아주 나쁘게 말한다.

다시 혼자가 된 그는 짐 허튼을 찾는다. 찾기가 어렵다. 그는 전 매니저를 찾아간다. 밴드 가족과 화해를 시켜달라고 그는 것이다. 라이브 에이드에 꼭 공연해야겠다며 도와 달라 한다. 밴드 식구들은 화는 나지만 그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 그럼에도 그를 안 받아들일 듯이 그의 애를 먹인다. 그에게 변명할 기회를 준다. 그러자 그는 용서를 빌면서 “우린 가족이니까. 퀸을 해체 못해. 고용인들을 써서 음악을 만들었어. 그런데 그들은 모두 내 의견이 좋다고 할 뿐, 너희들처럼 지적하거나 안 좋다는 사람이 없었어.”라며 다시 퀸을 시작하자고 한다.

그의 라이브 에이드 출연의 간절함, 그건 무료공연이라서 더더욱 그렇다.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 식량을 얻기 위한 모금운동의 일환인 공연, 내로라하는 대가들이 총출연하는 라이브 에이드에 그는 출연하고 싶다. 남을 위한 봉사도 봉사지만 이번은 그의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에이즈 판정을 받은 것이다. 프레디와 밴드 식구들은 용기를 낸다. 자신감을 갖는다. 공연장의 천정을 뚫자! 그런데 거기는 천정이 없어! 뚫을 천정이 없다면 하늘을 뚫자! 프레디의 성대가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그들은 연습에 돌입한다. 그리고 라이브 에이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동적인 드라마 앞에 세계인은 뙤창을 불렀으리라.

 

드디어 라이브 에이드! 프레디는 마치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라도 하듯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이들을 모두 초청한다. 우선 그의 가족, 짐 허튼 그리고 메리 부부, 그의 초청을 받은 그들이 그의 공연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의 대단한 공연에 큰 감동을 받는다. 누구인들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이건 현실일까? 그냥 환상일까? 로 시작하여 동정은 필요 없다고 외치는 아카펠라, 슬픈 발라드풍의 Mama, just killed a man 엄마, 방금 사람을 죽였어. 그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어. 이제 그 사람은 죽었어. 엄마, 인생이 막 시작됐는데 지금 내가 다 내팽개쳐 버렸어, 라며 마치 미친 듯한 소년의 비애를 담아낸다. 마치 한 인생의 일생을 진행하듯 다음엔 오페라처럼 I see a little silhouetto of a man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겁쟁이, 겁쟁이, 네가 감히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다고? 천둥과 번개소리가 난 너무 너무 무서워. Galileo, Galileo, Galileo, Galileo 로.... 저 좀 풀어줘요. 바알제붑이 나를 위해 마귀를 곁에 두었구나. 나를 위해로 이 곡으로 정점을 찍고 하드 록으로 잇는다. So you think you can stone me and spit in my eye? 그래 당신들이 내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 서 날 사랑한다더니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 아,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난 여기서 나갈 거야.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고 말 거야, 그리고 다음엔 발라드로 나가는 듯하고 마지막으로 관객과의 호흡이다. ‘Radio GaGa’다. I'd sit alone and watch your light 난 혼자서 앉아 불빛을 지켜봤어. 청소년기의 내겐 유일한 친구.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라디오에서 들었어. 그리고 이제 그 유명한

‘We are the Champions’이다. 관객과 가수가, 관객과 밴드가 혼연일체가 되는 감동, 완전히 한덩어리가 되게 하는 감동,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도 마치 그 공연에 관객으로 함께하는 듯한 감동을 주는 노래다. I've paid my dues 나는 나의 의무를 다했다. 매순간 나의 형기도 끝났어. 하지만 난 아무 죄도 짓지 않았어. And bad mistakes I've made a few I've had my share of sand kicked in my face But I've come through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And we'll keep on fighting 'til the end We are the champions We are the champions

우린 모두 챔피언이라며, 이제 패자를 위한 시간은 없다, 왜냐고 우리는 모두 세상의 쳄피언이니까Cause we are the champions of the world로 이들의 공연은 끝난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짐 허튼에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용서를 받는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예요.” 실제 인물 프레디 머큐리는 애석하게도 에이즈로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참으로 멋진 영화다. 마지막 ‘라이브 에이드’ 장면만 봐도 좋을 영화다. 굳이 감상평이라면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면 창조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 그의 삶이 그대로 녹아든 음악, 타고난 양성애적 성향으로의 괴로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보헤미안 랩소디 이 곡에는 한 인생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났으나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그럼에도 그러한 편견을 깨려는 노력의 과정,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내고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기에 용감하게 살아갈 것을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곡, 어쩌면 진정한 자유는 이 세상과의 결별임을 예감한 것은 아닐까. 감옥과도 같은 세상에서의 탈출, 형기를 끝낸 죄수와 같은, 완전한 자유를 얻은 듯한, 그래서 감옥에서 석방되는 듯한 심정의 노래,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은 고독하고 서글픈 곳이다.

줄거리에서 이미 보았듯이 그의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기저에는 그의 타고난 재능이 있다. 그에 더불어 그의 음악을 대하는 철학에 있다고 하겠다. 그는 자신이 사회 부적응자인 것은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가 완전히 어떤 규정한 틀에 맞추려는 환경 때문임을 알고 있다. 해서 그는 부적응자를 위한 부적응자의 노래를 지향하려 한다. 누구보다 고독한 그는 자신의 그 마음을 진솔하게 음악에 담아 넣는다.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자신 좋으라고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면 관객도 좋아한다는 것, 그렇지 못한 나는 독자 좋으라고 글을 쓰고, 듣는 이 좋으라고 강의하려 애써야겠지.

 

그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사랑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는 사랑하고 싶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 양성애자이다. 엄밀히 따지면 사람은 누구나 양성애자일 수밖에 없다. 갓난애는 엄마만 상대하다, 어려서는 일단 또래 애들 중 동성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낸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면서 이름만 우정과 애정으로 달라질 뿐 관심 갖기, 친해지고 싶은 욕망으로만 본다면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양성애적 성향은 당연하다. 다만 프레디는 외형적으로 드러나니까 문제일 뿐이다. 철없는 소년으로 살다가 여자의 정점인 퀸으로 살다가 다시 남성의 정점인 킹으로 살다 자유로운 아이로 돌아온다. 이를테면 그의 음악과 인생은 한 남자의 일생과 한 남자의 사랑의 행로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 청년, 한 남자를 사랑하는 중년으로 살다 간다.

다음으로 가족에 대한 개념이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가족과 우연으로 맺은 가족, 어느 쪽이 더 가깝냐는 문제다. 단지 같은 피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란 이름을 갖지만 실제로 가족이란 이름뿐 서로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혈연이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선 이웃보다 못한 것이 가족이니까. 혈연은 아니지만 같은 일로, 같은 정신으로 모인 가족이 때로는 더 끈끈할 수도 있으니까. 혈연적 유대감이 중하냐 정신적인 유대감이 중하냐고 할 때, 물론 이 둘이 합쳐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 정신적 유대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는 탕자처럼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놀기 좋아하고,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는 방탕자, 세상에 나와 온갖 고통을 겪고 배고픔을 경험하고, 외로움과 고독을 엄청 느끼고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환영을 받았던 성서 속의 탕자처럼 그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아버지와 화해한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예요.” 

 

- 최복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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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길게 쓸 수밖에 없네요. 그러니 이 영화로 이삼 일 보세요. 한꺼번에 읽기 어려우면 시간을 두고 읽어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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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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