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9.01.25 그리스로마 신화로 읽는 사랑열전/최복현
  2. 2019.01.11 죽은시인의 사회
  3. 2018.12.27 클래스
  4. 2018.12.20 보헤미안 랩소디(영화감상평)
2019.01.25 11:32

바람난 신과 인간의 적나라한 연애사건들,

 

그리스로마 신화로 읽는 사랑열전

/ 최복현 지음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밌고 흥미로운 신화 속 사랑 이야기, 45가지의 사랑의 빛깔을 읽는다. 

 

 

‘그리스신화로 세상 읽기’라는 테마로 오랫동안 강의를 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우리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온갖 사랑들이 있다. 신들 중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끊임없는 바람과 외도,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의 계속되는 시기와 질투뿐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미망인인 어머니와 결혼해 자신의 형제이자 자식을 낳은 오이디푸스의 운명적인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던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비극적인 사랑, 미소년 히아킨토스에 마음을 빼앗긴 아폴론의 동성 간의 사랑, 데메테르를 향한 포세이돈의 폭력적인 사랑, 에로스의 장난으로 시작된 아폴론과 다프네의 엇갈린 사랑, 에코의 저주로 인한 나르키소스의 자기 사랑, 조국을 배신하고 천륜을 저버린 스킬라의 사랑 등 45편의 사랑이 망라되어 있다. 바람난 신, 인간과 사랑에 빠진 신, 그리고 사랑에 눈먼 인간들의 숨김없는 연애사건과 은밀한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들춰봄으로써 지금 우리 시대의 사랑을 재조명한다. 기쁨, 슬픔, 눈물, 아픔, 이별, 시기, 질투, 쾌락, 배신, 분노, 좌절, 복수 같은 다양한 사랑의 감정들을 통해 우리는 신화 속 사랑 이야기에 완전 공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막장 드라마 45편을 보는 재미와 흥미, 그리고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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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신들의 여러 성정 가운데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랑은 인류 보편적인 것이며, 신들의 세계는 물론 인간 세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신화는 사랑 놀음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싶을 만큼 사랑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때로는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아주 드물게 만날 수 있는 난봉꾼이나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막 나가는 여인네를 만날 수 있는가 하면,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 남녀와 사랑 때문에 조국과 아버지를 배신한 처녀, 심지어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비극의 주인공도 만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사는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본문 008~009쪽

진정 사랑은 ‘그럼에도’입니다. 가끔 조건 때문에 사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랑은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조건이 깨지면 사랑도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가정법의 사랑입니다. 양보법인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조건법적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없이 조건만 따집니다. 때문에 막상 그 조건을 충족하면 사랑도 끝나고 맙니다.
-본문 091쪽

 

 

신들은 사람들보다 더한 사랑을 했다

제우스는 그리스 신화 최고의 신으로 그 어떤 신들보다 강력하지만 천하의 바람둥이다. 올림포스 최고의 여신이자 뛰어난 미모를 지닌 헤라에게 구걸하다시피 결혼을 했는데도 제우스의 바람기는 전혀 잦아들지 않았다. 이오, 칼리스토, 레토, 세멜레, 에우로페, 안티오페, 알크메네 등 여신과 님프는 물론이고 인간 여성들과도 끝없이 바람을 피웠다. 그리고 매번 질투의 여신 헤라의 복수가 이어져 그 장면들은 마치 사랑과 전쟁 같은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신화에 등장하는 다른 신들 역시 사랑 이야기에서 빠지라면 섭섭할 정도로 19금(禁)처럼 음란할 뿐 아니라 파격적이고 다채롭다. 여신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아프로디테가 프시케의 미모를 질투해 아들에게 복수를 부탁했더니 오히려 프시케와 사랑에 빠져버린 에로스, 카산드라에게 첫눈에 반했다가 거부당하자 처절한 복수를 하는 예언의 신 아폴론, 카르데아를 속이고 하룻밤 정을 통한 야누스, 에오스의 유혹에 넘어가 밀회를 즐기는 오리온 등 신들의 사랑이라고 뭔가 신성하거나 인간보다 더 아름답거나 특별하지도 않다. 오히려 사람들보다 더 난잡하고 너저분하게 얽히고설킨다. 때로는 인물관계나 상황 등이 황당무계하여 막장 드라마조차 조롱할 정도로 자극적이고 비도덕적이다. 실은 그래서 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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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다


신화(myth)는 ‘말’ 또는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mythos’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역사’와 달리 허구, 즉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다. 특히 그리스 신화는 문명 이전의 고대 그리스인이 원초적 감각이나 감정으로 체험한 이야기들이 신화로 구전되어 오면서 우리 입맛에 맞게 각색되고 변형되었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하다. 저자가 프롤로그에 밝히고 있듯이 사실 너머에 있는 진실, 즉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욕구나 욕망, 본능 등이 신화라는 이야기 속으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이나 논리에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과장과 왜곡, 그리고 일탈로 사람들의 원초적 본능의 압박이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경험을 하도록 한다.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그리스로마 신화에 열광하는 데는 그 때문이다. 신들이 우리처럼 사랑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배신도 하고, 시기와 질투도 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우니까 인간들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인류 보편적인 감정이자 인간 세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인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목차

 

프롤로그|신들의 사랑, 그 사랑 이야기



1. 연애의 귀재 제우스, 사랑의 바다를 유영하다

연막을 친 제우스와 이오의 사랑
제우스와 칼리스토의 벌처럼 가혹한 사랑
제우스에게 버림받은 레토의 서러운 사랑
제우스와 세멜레의 재가 되어 사라진 사랑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구름처럼 흘러간 사랑
제우스와 안티오페의 잘못 꼬인 사랑
알크메네를 속인 제우스의 이기적인 사랑



2. 연애에 어설픈 남신들, 사랑의 강에 빠지다

에로스를 향한 프시케의 믿지 못하는 사랑
에로스와 프시케의 영원한 사랑
아폴론과 다프네의 엇갈린 사랑
카산드라에게 거부당한 아폴론의 비정한 사랑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동성 간의 사랑
야누스와 카르데아의 장난 같은 사랑
로티스를 향한 프리아포스의 일방적인 사랑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의 주변을 힘들게 한 사랑
페르세포네에 대한 하데스의 강제적인 사랑
데메테르를 향한 포세이돈의 폭력적인 사랑
베르툼누스와 포모나의 달콤한 사랑



3. 연애 초보 여신들, 사랑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질투로 시작한 아르테미스와 오리온의 사랑
알페이오스의 사랑을 시험한 아르테미스
속절 없이 끝난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사랑
스킬라를 향한 글라우코스의 짝사랑
에오스와 티토노스의 진실한 사랑
수다로 망친 에코의 사랑
에코의 저주 받은 나르키소스의 자기 사랑



4. 순수한 인간들, 사랑의 숲에 뛰어들다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지고지순한 사랑
피그말리온의 꿈을 이룬 사랑
케익스와 알키오네의 아름다운 사랑
죽음도 불사한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사랑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운명적인 사랑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변함없는 사랑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죽을 만큼 깊은 사랑
데우칼리온과 피라의 조화로운 사랑
멜람푸스와 이피아나사의 운 좋은 사랑



5. 사랑에 눈먼 인간, 사랑으로 비극을 맞이하다
디오니소스처럼 술에 취한 분별없는 사랑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바람 같은 사랑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비극적인 사랑
천륜을 저버린 스킬라의 사랑
질투로 눈먼 키벨레의 사랑
아탈란테를 향한 멜레아그로스의 잘못 꿴 사랑
아탈란테와 히포메네스의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
에케나이스를 배신한 다프니스의 사랑
파리스와 헬레네의 전쟁을 부르는 사랑
알크메네를 향한 암피트리온의 인내로 얻은 사랑
메스트라의 자기희생적 사랑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9.01.11 11:38

카르페 디엠할 이유

 

죽은 시인의 사회

 

/ 최 복 현

 

 

존재에게는 길이 있다. 존재는 그 길을 만들며 간다. 파이프 연주, 교기를 든 학생들이 강당에 들어선다. 1859년에 창립된 명문 웰튼 고등학교의 새 학기 개강식이다.

"지식의 촛불을 켜십시오. 이 학교의 4대 원칙은 전통, 영예, 규율, 최고입니다."

명문학교임에 틀림없다. 75%가 명문대학에 진학한다니까. 그럼에도 그 우수한 학생들 중 한 그룹은 나름 4대원칙이 따로 있다. 이들은 저속, 공포, 퇴폐 등을 원칙으로 하는 죽은 시인의 사회란 그룹의 주동이 되는 학생들이이다. 이들은 틀에 매인 공부에서 벗어나려 한다. 어느 어른이든 이들을 응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따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다. 두뇌가 뛰어난 만큼 선생들을 은근히 골탕 먹이는 학생들, 이들의 적임자가 학교에 부임해 온다. 단 한 사람, 이들을 응원하며, 이들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장하게 하려는 이가 있으니, 키팅 선생이다. 그가 교과서를 박박 찢는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도 교과서를 찢어버리라고 한다. 굉장한 파격이다 

 

찢어버려라! 찢어 버려! 이건 교과서지. 성경이 아니야. 이런 걸 찢는다고, 지옥에 가진 않는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지? 찢어버려라! 이런 헛소리는 찢어버려라. 이건 전투다. 전쟁이다. 그 사상자는 바로 너희들의 마음과 영혼이다. 나의 수업에선 다른 사람이 평가한 걸 보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배워가는 거야! 이리 모여 봐. 우리는 공부를 위해 시를 읽고 쓰지 않는다. 우리가 시를 읽고 쓰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야. 의학, , 경영, 기계, 이런 것들은 우리인생에서 필요한 것이지. 삶을 지속해 나가는데.... 하지만 시, 아름다움, 로맨스, 사랑...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인거지.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봐야 한다.. 너희 앞에 책상을 밟고 올라가서 세상을 봐라.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거. 날 못 믿겠니? 직접 해봐. 어서... 여러분들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때. 바로 그 때 또 다른 방법으로 그걸 바라보아야 한다. 비록 바보스럽고, 틀린 것 같아도 시도를 해봐. 여러분들이 무언가를 읽을 때, 작가가 뭘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지마라.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걸 고려해라. 여러분들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도록 노력해라. 시작하는 게 늦을수록, 발견할 가능성은 더 적어지지. 그냥 받아들이지 마라. 그걸 깨고 나와라 우리는 모두 벌레들의 먹이에 불과하지... 제군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언젠가 호흡을 멈출 것이고, 차게 식어질 것이고, 죽을 것이기 때문이야.”

 

 

처음부터 학생들은 의아하다. 선생에게 끌린다. 웬만한 선생들이라면, 골탕의 대상으로 여겼던 아이들, 이 선생에겐 왠지 끌린다.

선생은 다시 아이들에게 나오라고 한다. 그리고 큰 사진, 학교를 빛낸 졸업생들의 졸업사진을 보게 하며 말을 잇는다.

, 이리 한걸음 나와서 이 옛날 사진을 봐. 이리로 나와서 과거의 얼굴들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자네들은 여러 번 이 사진들을 지나쳤지만 자세히 보지는 않았을 거야. 그들은 여러분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그렇지? 같은 머리모양, 여러분처럼 호르몬이 가득했지. 여러분들이 느끼는 것처럼 확신에 차 있었을 거구. 세상을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을 거야. 그들은 믿었어. 그들이 거대한 일을 하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사실을. 여러분들 중 다수가 그런 것처럼 그들의 눈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지. 하지만 그들은 기다렸어. 너무 늦어서 그들의 삶에서 아주 작은 것도 이룰 수 없을 때까지.”

선생은 학생들에게 그리스신화의 나르키소스를 예로 든다.

제군들! 이 소년들은 미루다 미루다가... 끝내는 수선화의 거름이 되고 있어. 죽어서 말이지...여러분들이 가까이서 들어본다면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여러분들에게 주는 유언을. . 기대봐. 들리나? 귀를 더 기울여 봐....어렴풋이 어딘가에서 들릴 것이다. 어렴풋이...

카르페. Carpe... 카르페 디엠.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지금을 잡아라... 바로 지금. 너희의 인생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펼쳐지고 있어... 듣고 있나? 여러분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바로 지금!”

 

 

선생의 교육법은 점점 더 나아간다.

자 올라와 봐, 여기서 보면 모든 게 달리 보여. 시란 관점을 바꾸는 거야. 관습적으로 보던 것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에서 보는 거라고. 자자 올라와!”

산만한 학생들에게 그는 학생들 앞에서 책상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책상에 올라오라 한다. 그는 영어 선생으로 부임하여 온 첫 수업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이 학교 출신이니까 물론 후배들이라 자신감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인간상이기 때문이다.

그가 즐겨 읽는 시는 휘트먼의 시들로, 그의 정신을 잘 드러내준다. 자연 그를 따르는 학생들 역시 휘트먼의 시를 애송한다.

 

 

 

나는 앉은 채로 세상의 모든 슬픔을 두루 본다. 온갖 고난과 치욕을 바라본다. 나는 스스로의 행위가 부끄러워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복받치는 아련한 흐느낌을 듣는다.

나는 어미가 짓눌린 삶 속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려 주저앉고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죽어감을 본다.

나는 아내가 지아비에게 학대받는 모습을 본다. 나는 젊은 아낙네를 꾀어내는 배신자를 본다.

나는 숨기려 해도 고개를 내미는 시새움과 보람 없는 사랑의 뭉클거림을 느끼며, 그것들의 모습을 땅위에서 본다.

나는 전쟁, 질병, 압제가 멋대로 벌이는 꼴을 본다. 순교자와 죄수를 본다. 뱃군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일에 목숨을 걸고 나설 차례를 정하려고 주사위를 굴리는 모습을 본다.

나는 오만한 인간이 노동자와 빈민과 흑인에게 던지는 경멸과 모욕을 본다. 이 모든 끝없는 비천과 아픔을 나는 앉은 채로 바라본다. 보고, 듣고, 침묵한다.

 

 

키팅 선생이 살고 싶은 삶, 제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삶을 잘 드러내주는 시가 이 시가 아닐까 싶다. 키팅은 시는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영혼을 해방시키려 한다. 관습에서, 점수에서, 편견에서, 이론에서,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학생들을 성장하게 하고 싶어 한다. 이들을 이를테면 진정한 시인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진정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진정한 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스스로 진정한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존재로 자신의 제자들이 자랐으면 한다. 새로운 날은 오지 않아도 새로운 날을 꿈꾸게 하고 싶다. 그는 시든 인생이든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사랑을 찾으려면 사랑을 찾을 용기를 갖게 하고 싶다.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자신만의 걸음을 찾게 하고 싶다. 그것은 어렵다. 남들의 눈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란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죽은 시인의 사회의 부활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arpe Diem! 즉 지금의 시간을 즐기라는 것이 키팅 선생의 신념이다. '오늘을 살라'고 역설하며 참다운 인생의 눈을 뜨게 하려 한다.

아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운동장에서 학생들에게 걷게 한다. 마음대로 걸으란다. 트랙을 정식으로 돌라는 게 아니라 걷고 싶은 대로 걸으란다.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머뭇거린다. 그러자 선생이 먼저 시범을 보인다.

걸어 봐. 내키는 대로 걸어 보라고..... 그래 넌 첨엔 마지못해 걸었어. 그리고 넌, 시키니까 걸었어. 넌 자발적으로 운동이 되니까 기꺼이 걸었어. 그런데 잠시 지나니까 모두 같은 방식이야. 걸음 걸이의 방향도, 속도도 같이 맞춰서 걸었잖아. 그냥 걸으라고, 자기 걸음을 찾아 걸라는 거였어.”

그는 자신을 선생이란 부름 대신 캡틴이라 불러 달라 한다. 캡틴, 그건 휘트먼의 시에서 따온 호칭이다. 의미로 볼 때 선장이란 의미다. 그는 그랬다. 그는 선장이었다. 드넓은 바다, 풍랑이 이는 바다의 작은 배를 호기 있게 끌고 나간 선장이었다. 그 안에 탄 선원들, 토드, , 녹스 등, 그들은 그의 진정한 선원이었고, 그는 그들의 선장이었다. 그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을 찾으려 했다. 어떤 아이는 사랑을, 어떤 아이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그 길을 열어가려 했다. 그게 험하고 허망하고 알 수 없는 해로를 그럼에도 즐겁게 헤쳐 갈 수 있는 방식이니까.

 

 

! 캡틴 나의 캡틴! / 휘트먼

 

아 선장이여, 나의 선장이여! 우리의 무서운 항해는 끝났습니다.

배는 갖은 난관을 뚫고, 우리가 추구했던 바를 쟁취했습니다.

항구는 가까워지고 종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옵니다.

사람들은 든든한 선체에 눈길을 모읍니다. 웅장하고 엄숙한 그 배에.

그러나 아, 심장이여! 심장이여! 심장이여!

,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 방울이여,

싸늘하게 죽어 누워있는

우리 선장의 쓰러진 갑판 위에.

, 선장이여! 나의 선장이여! 일어나서 저 종소리를 들으시오.

일어나시라, 깃발은 당신을 위해 펄럭이고 나팔은 당신을 위해 울리고 있어요

꽃다발과 리본으로 장식한 화환도 당신을 위한 것

-당신을 위해 해안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

그들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어요.

동요하는 무리의 진지한 얼굴과 얼굴.

, 선장이여! 사랑하는 아버지여!

내 팔을 당신의 머리 아래에 놓아요!

이것은 꿈입니다. 갑판 위에

당신이 싸늘하게 죽어 쓰러집니다.

나의 선장은 대답이 없고 그 입술은 창백하여 움직이지 않네.

아버지는 내 팔을 느끼지 못하고 맥박도 의지도 없으시네.

배는 안전하게 닻을 내렸고 항해는 끝이 났습니다.

무서운 항해에서 승리의 배는 쟁취한 물건을 싣고 돌아옵니다.

아 환호하라 해안이여! 울려라 종이여!

그러나 나는 슬픈 발걸음으로 쓰러져 누워

갑판을 걷는다, 우리의 선장이 잠든 곳을.

 

 

해서 그들은 그들의 선장이 살아왔던 모습을 따라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만든다. 거기서 해방구를 찾는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특히 그의 제자 닐은 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음에도 그것을 마음껏 할 수 없다. 그래서 닐은 어른들에게, 자기의 길을 막은 이에게 복수를 한다. 바로 아버지의 물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들만의 클럽도 문을 닫는다. 키팅 선생의 그 배는 좌초한 것일까.

 

앞줄에 섰던 이를 뒤로 보내라 뒷줄에 있던 이를 앞으로 나가게 하라 고집통이, 얼간이, 때묻은 이들로 하여 새 제안을 내도록 하고 낡은 제안은 뒤로 미루고

사나이로 하여 자기 자신이 아닌 도처에서 기쁨을 찾게 하라.

계집으로 하여 자기 자신이 아닌 도처에서 기쁨을 찾게 하라.

 

같은 배에 타고도 생각은 각기 다르다. 지레 착한 아이가 되어 보겠다고 배반의 길을 간 아이 카메론, 어른들의 협박에 굴하여 스승을 배신해야만 했던 아이들이다. 그 배에는 예수 시대처럼 나약한 베드로 일당, 배신자 유다 등이 타고 있었다. 그럼에도 키팅 선생이 떠나는 때에 한 아이의 용기로 시작된 진정한 반항은 자신들의 캡틴을 다시 부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실이며 정의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아이들로, 눈을 뜰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키팅, 그는 진정한 캡틴이었다. 다시 부상하는 작지만 단단한 배의 선장이었다.

 

 

“‘카르페디엠오늘을 잡아라, 장미가 피었을 때 장미를 따라. 기회를 놓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누구나 어느 날인가는 숨이 멎고 죽어갈 테니까. 그러니까 오늘을 잡아라. 여기에는 사랑도 예외는 아니고 하고 싶은 일도 예외는 아니다.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녹스는 사랑을 위해 지금 나서야 하고 지금 시도해야 하고, 지금 고백해야 하고, 지금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얻어맞고 깨지면 어때. 기회를 놓치고 아무 시도도 못 해보는 것보다는 그게 나은 거지.

, 연극을 좋아한다면 누가 방해 하더라도 해 보는 거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뭐냐고. 그건 시, 아름다움, 사랑, 낭만 때문이야.”

키팅 선생의 교육법, 파격적이라고 생각할 교육법, 자유로운 인간, 진정한 인문학적 인간을 기르는 교육 방법임엔 틀림없는데, 그의 교육방법을 받아들일 환경이 아니다. 때문에 그 방식은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사회의 벽이 선입견의 벽이 관습의 벽이 너무 두껍고 높다.

그래서 닐은 자기 가면을 벗고 솔직해지려 했지만 아버지 앞에만 서면 더 이상 반발을 하지 못하는 순한 양에 불과했으니, 그는 이제 죽은 시인의 사회로 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선생이 꿈꾸었고, 그들이 배웠던 자유로운 이상, 누군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며 삶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어른들이 그어 놓은 세상엔 없다. 때문에 학생들을 그들만의 공간을 찾는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아지트, 그들만의 동굴로 간다.

 

 

죽은 시인의 사회이 세상엔 이제 살아 있는 시인의 사회는 발을 붙일 수 없다. 단지 있다면 꿈속에서만 자유로울 뿐이다. 그러니 진정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그러니 그 세계를 어디서 찾을까. 그들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동굴로 간다. 그 공간만이 살아 있는 시인들의 살 수 있는 사회니까. 언어의 목적이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든 아니든, 사랑은 삶의 의미로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 소중한 가치를 미래의 투자라는 명목으로, 점수라는 명목으로 억눌러야 할 뿐이니까.

진정한 삶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이니까. 그것을 위해 새로운 관점을 찾아 자유를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낭만을 노래해야 하니까. 순응하지 말고 자유롭게 걸어라. 진정한 삶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리고 순응의 위험성을 버리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리라.

 

 

이 영화는 학교의 진정한 역할, 어른들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학교의 역할, 그건 점수 따기 기계, 오직 대학에 또는 명문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진학시키느냐를 교사의 능력, 학교의 수준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반성하게 하는 좋은 영화다. 오래 전에 만든 영화지만 거기에 희생당하는 아이들, 끝내는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건까지 가져오게 만드는 어른들, 그 어른들은 다름 아닌 학교의 사람들이며, 그 부모가 공범이라는 점이다.

틀에 짜인 그 안에서 버둥거리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몸부림이 애달프다. 언제까지 이들의 그 움트는 속 씨를 누를 수 있을까, 이대로 눌러주면 어른이 될 때까지 운 좋으면 가능할 것이다. 그 다음 어른이 되어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지 못하면 학교는 그 학교로서의 역할을 다 한 것이며,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일까. 아예 서서히 스스로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의 길을 선택하고 찾아 가게 하는 게 나은 게 아닐까?

제군들! 귀를 더 기울여 봐. 어렴풋이 어딘가에서 들릴 것이다. 어렴풋이. 카르페 디엠.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지금을 잡아라... 바로 지금. 너희의 인생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펼쳐지고 있어... 듣고 있나? 여러분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바로 지금!” 

 

   -최복현-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8.12.27 09:21

좋은 교사도, 나쁜 학생도 없는 / 교사와 학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

 

클 래 스

 

 

감독: 로랑 캉테 / 영화감상평: 최복현


 

 

 

 

중학생, 괴물과 같은 아이들이라 지칭하는 중학생들이 활개 치는 교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교사는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행동할까? 아이들은 어떻게 교사를 대하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학생과 교사가 서로 마치 적이라도 되는 양 대립하고 있다면, 양측 사이엔 뭔가의 벽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벽보다 오히려 불편하게 하는 벽, 깰 수 없는 벽, 그 두꺼운 벽을 실감할 수 있는 영화다.

 중학교 교실, 그 중에서 2학년 3반 교사는 프랑수아다. 프랑수아 선생이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하나 학생들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선생을 선생으로 보지 않는다. 선생의 약점을 잡으려 들고, 말대꾸만 하려고 한다. 그러니 프랑수아는 속이 탈대로 탄다. 난감하다. 도무지 통제할 수 없다. 아이들이 자릴 비우면 의자들이 학생들을 대신하여 어지럽다. 같은 방향이 없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 댄다. 마치 무공해지역에 들뛰는 메뚜기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댄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 주로 수업 시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단순할 것 같은 교실, 별 이야기가 없을 것 같은 교실의 모습들이 긴장감을 더해준다. 뭔가 벌어질 것 같은 조짐이 상존한다. 그래도 더 이상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교사들이 울화통을 애써 참기 때문이다.

교사 프랑수아는 특출 난 교사는 아니다. 그저 평균적인 교사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면 조금 다르다 할까? 아이들이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짓궂게 장난을 쳐도 주눅 들지 않고 어떻게든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쳐보겠다 애쓰는 그런 정도의 교사, 그럼에도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려는 평균 정도의 교사다. 아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무능한 선생도 아니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들 사이엔 벽이 있다. 도무지 깨어지지 않는 벽이 있다. 그럼에도 프랑수아 선생은 끝없이 학생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벽을 어떻게든 깨보려 노력한다. 가장 보편적인 선생, 무능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그는 무척 힘들게 교사생활을 한다. 그는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자기가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쳐 보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그와 아이들 사이의 벽은 끝내 깨지지 않는다.

 

 

아무리 통제를 따르지 않아도 달리 제재할 방법도 없다. 매를 들 수도 없다. 험한 말을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가르쳐 봐야 알죠, 울화통 터지는 거....”란 교사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걸 참아내는 게 용하다. 꼬박 꼬박 말대꾸하고 비웃어 대는 아이들은 학생들은 “배워봐야 알죠. 말뿐이라는 거....” 서로 다른 생각, 학생과 교사의 벽, 학생들은 꼬박꼬박 대들고, 교사는 할 수 있는 통제수단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너무 지겹게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게 불만이다. 매로 다스렸다가는 큰일 나고, 그렇다고 욕을 하면 인권침해란 비난을 듣거나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가 어쩌다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 아이들의 특성을 알기 때문에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는데 어쩌다 한 마디 말실수를 했는데, 아이들이 꼬투리를 잡아 그를 괴롭힌다. 제법 가까워진다 싶었는데, 하필이면 한 아이를 퇴학 시켜야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학생들은 교사를 비웃는다. 그 일로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던 그의 반 학생들 중에서 한 학생은 결국 퇴학 처분을 받는다. 그러자 교사는 선생 노릇 못하겠다며 교사로서 회의감은 느낀다. 아이들은 이이들대로 ‘존경할만한 선생이라면 얼마든 존경할 것’이라고, ‘학생들이 교사의 말에 잘 따르지 않는 건 교사가 무능하기 때문이고, 믿을 수 없기 때문’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학생들과 교사는 그렇게 공존하긴 한다.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학교는 학교대로 존재하고 영화는 영화대로 특별한 해답 없이 스크린에서 점멸한다.

 

 

프랑스 학교 교실의 모습,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교라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의 교실 모습과 별반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부제가 벽 사이에서인 이 영화는 그다지 교실을 미화시키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나라 중학교의 현주소를 견주어 보면 참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중학생들이 주인인 교실, 그야말로 학생 수만큼의 문화가 상존한다. 그 문화의 충돌은 전쟁과도 같다. 이게 중학교 교실의 현주소다. 이 영화는 과장하거나 축소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로만 보면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교권 하락의 시대다. 어떤 이는 그럼에도 교사가 사랑을 베풀어주면,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면 다 해결된다고 한다. 하지만 난, 교생실습을 한 적이 있는 난, 자신이 없다.

이 영화를 보면 나는 정말 교사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 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한다는 건 신의 경지에 가까울 것 같아서다.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 교실도 이렇다면 나는 그 교사들이 참 존경스럽다. 그들의 인내심이, 그들의 지도 요령이 존경스럽다.

중학생들이 판치는 교실을 체험하지 못한 어른들이 보면 좋을 영화다. 우리 아이가 중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무조건 내 아이만 옹호할 수는 없을 테니까. 교사는 교사대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영화다. 교사라면 최소한 프랑수아 선생 정도는 되어야 평균은 갈 테니까. 물론 그 이상의 교사를 꿈꾸어야 할 것은 당연하다. 중학교 교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최복현-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8.12.20 09:22

열 번을 봐도 더 보고 싶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최복현

 

 

 

“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이 될 것이다.”

평범하지 않게 살겠다는 것, 남다르게 살겠다는 것, 그것은 쉽지 않다. 이렇게 남다르게 사는 사람, 평범하지 않은 사람, 이들을 가리켜 이방인이라고, 아웃사이더라고 부른다. 부정적으로는 미친놈 또는 또라이 소리 듣기 딱 좋다. 사회는 그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의 진보를 이끄는 건, 세상을 바꾸는 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건, 그들의 몫이다.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 적응하기 어렵다. 소위 부적응자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부적응자, 때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진한 감동을 주는 이들은 그들이다. 아웃사이더들이다. 나와 그들이 가까이 있으면 나는 그들을 비웃거나 손가락질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나와 멀리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흥미를 가지고 바라본다. 나와 같은 심리 덕분에 그들 중 어쩌다 한두 명은 영웅이 되고, 전설이 된다. 이들에게 우리는 찬사를 보낸다. 박수를 보낸다.

보헤미안 랩소디, 집시들의 광시곡? 그래, 제목만으로는 어디 거칠 것 없이 떠도는 이들의 자유로움이 배어나오는 노래겠다, 노래가 아주 열정적이겠다 싶다. 자유로움과 뜨거움, 이 영화는 그렇다. 그렇다고 대중과 먼 음악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찰떡궁합의 음악이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너무 황홀하고 너무 신나고 너무 마음에 와 닿는 음악이다. 가수와 관객이, 밴드와 관객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하늘이 내린 음악이랄까!

 

보헤미아Bohemia은 일반적으로 사회의 관습이나 규율 등을 무시하고 방랑적이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사람, 즉 집시를 일컫는다. 원래는 체코의 서부 지방 보헤미아 출신 사람을 의미한다. 지방 이름은 보헤미아, 이 단어에 사람이란 접미사를 붙여 보헤미안이란 프랑스어식 표현이다. 보헤미아 지방 사람들은 경쾌한 춤을 즐겼는데, 프랑스인들은 춤과 노래를 즐기는 집시들이 보헤미아 지방 출신으로 알고 그들을 가리켜 보헤미안이라 붙인 게 유래다. 실제 보헤미아 인들은 집시처럼 떠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랩소디Rhapsody’는 주로 음악용어로 쓰인다. 주로 서사적·영웅적·민족적 성격을 갖는 환상풍의 자유로운 그리고 즉흥적인 기악곡을 가리키며 우리말로 광시곡이다. 즉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발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민자 출신 파록 버사라는 파키스탄 인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튀어나온 이에다 이민자 출신으로 사회의 냉대를 받으며 그는 공항의 수하물을 다루는 노동자로 생활한다. 그의 아버지는 기독교 출신이 아닌 조로아스터교 교인으로 항상 그에게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을 할 것을 강요한다.

비록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지만 자신은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파록 버사라, 그가 어느 날 우연히 백화점 여성복 코너를 운영하는 메리를 만난다. 첫눈에 호감이 간다. 서로 통성명만 하지만 눈빛은 서로 통한다.

어느 날 그는 소규모 클럽에 들어갔다가 생음악을 하는 로컬 그룹과 조우한다. 나중에 그들을 직접 찾아간다. 그들은 마침 보컬이 없어서 해체위기다. 그는 자신을 보컬로 쓰라고 호기를 부린다. 그걸 인연으로 그는 로컬 그룹의 보컬로 활동한다. 메리의 여성복 코너에서 여성 옷으로 분장하고 그때부터 여성스럽게 꾸미고 음악활동을 한다. 그가 참여하면서 그들의 밴드는 <퀸, 프레디 머큐리>로 이름을 바꾼다. 이제 그의 이름은 프레디 머큐리로 세상에 선보이면서 그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다. 제목처럼 즉흥적이며 자유로운 발상으로 그의 노래는 보편성을 넘어선다. 덕분에 지역에서는 제법 알려진다. 넉넉하게 생활할 정도는 아니지만 근근이 음악으로 생활할 만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 프레디 머큐리의 제안으로 그들이 이동수단으로 삼던 밴을 판다. 그 돈으로 그들은 음반을 내기로 한다. 모험이 없이는 지금보다 나은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생각한 것이다. 그의 뒤에는 그를 응원하는 메리가 있다. 그의 화려한 의상은 메리의 조언과 아이디어가 따른다. 하지만 그는 가족으로부터는 철저히 외면 받는다, 독실한 조로아스터교도인 아버지는 그가 추구하는 음악을 사탄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은 오히려 메리와 그와 함께하는 밴드친구들이다.

그리고 1년 후, 자신을 저버리면 성공할 수 없다는 철학의 프레디의 고집대로 그들만의 개성으로 그들의 음악성은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게 드디어 엘튼 존의 매니저가 접근한다. 메니저에게 그는 ‘부적응자들을 위한 부적응자의 노래, 마음 쉴 곳 없는 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겠단다. 그들의 데뷔는 성공적이어서 BBC방송에 비록 립싱크이긴 하지만 출연 기회까지 얻는다. 그걸 기점으로 그들은 대단한 호응을 얻는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우선 즉흥적이며 자유롭다. 덕분에 어느 무대에서든 관객의 호응을 금방 이끌어낸다. 게다가 그의 그러한 재능은 무대를 지배하고도 남는다. 관객과 가수가 한 몸이 되는 듯한 분위기, 화려한 퍼포먼스, 밴드 퀸의 인기는 날로 높아간다.

음악에서의 성공과 함께 그와 메리의 사랑도 무르익는다. 메리가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큰 무대에서 잘할 수 있는지 묻자 그는 무대에 서면 늘 자신이 꿈꾸던 무대여서 틀릴 수가 없단다. 그러니까 그는 철저히 무대체질인 셈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메리에게 반지를 건네며 프러포즈를 한다. 죽는 날까지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하면서.

 

그들의 사랑의 2라운드가 넘어서는 순간 둘은 마음은 함께 있어도 몸은 나누어진다. 그의 밴드는 미국 공연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기는 날로 뜨거워지면서 미국 전역을 누비다시피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메리와 전화로 사랑을 고백하며 진정한 사랑을 전한다. 그럼에도 그는 늘 여성취향의 옷을 입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깨닫는다. 메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밴드 내의 남자들과 진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그는 사랑의 불안을 느낀다. 그때쯤 그가 만든 노래는 그의 불안을 예고한다.

 

Love of my life, you've hurt me You've broken my heart, and now you leave me

Love of my life, can't you see Bring it back, bring it back, don't take it away from me

Because you don't know what it means to me Love of my life, don't leave me

내 삶의 사랑아, 너는 나를 아프게 했어. 너는 내 마음을 산산조각 부수었고, 지금은 넌 날 떠나잖아. 내 삶의 사랑이여, 너는 볼 수 없니? 돌아와 줘. 나에게서 빼앗아 가지 마. 너는 그게 나한테 무슨 의미인지 모르니까, 내 삶의 사랑아, 날 떠나가면 안 돼.

 

메리는 그를 여전히 사랑함에도 그가 느낀 불안, 양성을 모도 사랑하는 그를 메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들의 미국 공연을 가는 데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자 그들에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마이애미 상에서 음반제작의뢰가 온다. 그렇게 시작한 그들의 새로운 음반 만들기, 그때 탄생한 곡이 <보헤미안 랩소디>이다. 6분이나 되는 분량의 곡이다. 그걸 만들면서도 대화는 왠지 불안하다. 밴드는 망하는 것보다 깨지는 게 쉽다든가, 모두 다 떠나고 진실을 빼앗기고 망할지는 모르지만 이라면서도 그들은 서로의 재능을 모아 특이한 곡을 만든다. 여러 장르의 혼합이다. 갈릴레오, 레오, 관객과 함께하는 쿵쿵 짝 등. 나름 신선하다. 그러나 음반을 의뢰한 제작사 사장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6분이란 시간 때문에 그걸 틀어줄 방송은 없다는 판단이다. 그들은 ‘공식을 반복하는 건 의미가 없다’ 며 자존심을 내세운다. 한 사람으로 규정되지 않는 음악을 이들은 추구한다. 그 중심엔 프레디 머큐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음악을 만들 때 각자의 재능과 각자의 취향을 서로 논의하여 녹여 넣는다. 사장은 공식이 좋다고 한다. 그들은 용감한 자에게 행운이 따른다는 믿음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 이것이 이들 음악의 3라운드를 여는 계기일 것이다. 그것이 순탄하든 고통이든.

일단 브레이크가 걸린 음악행진, 메리와의 사랑에도 이상신호가 온다. 메리가 미국에 건너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은 서로 다른 방을 쓴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의 방을 건너다보면서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며 전화로만 사랑을 나눈다. 당연히 그것은 갈등을 야기한다. 결국 그는 메리에게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고백한다. 메리에게 용서해달라고 하자, 메리는 그건 프레디의 잘못은 아니어서 더 힘들다고 한다. 그때부터 프레디 머큐리는 복장을 남성 형으로 바꾼다. 머리도 이제는 더는 기르지 않고 남자답게 자른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기는 올랐지만, 마음대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을 할 수 없는 좌절감 같은 것,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 때문에 그들은 술과 마약으로 도피한다. 방탕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는 예감한다. 절제 없는 생활의 연속, 그들 사이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특히 프레디 머큐리는 동료들로부터 뜨거운 눈총을 받기 시작한다. 그가 황제 노릇을 하며 술집에서 주접을 떨자 그의 동료들은 모두 자리를 뜬다. 남은 이는 고용인과 둘, 그가 지나치는 고용인 짐 머튼의 엉덩이를 툭 친다. 남자가 화를 낸다. 나중에 술에 취한 그를 차마 그냥 두지 못하고 다가온 짐 머튼은 이제 고용인 그만 두겠다면서 그에게 키스한다. 진한 키스 후 그는 프레디 머큐리에게 “자신을 좋아할 결심이 생기면 찾아와요.”라며 자리를 뜬다. 그의 황제 시절, 팬으로부터는 대단한 인기를 얻지만 그는 점점 자신 속으로 숨는다. 고독하다. 외롭다. 스스로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 시절의 끔찍한 자신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 we will rock you다.

 

Buddy you're a boy make a big noise Playin' in the street gonna be a big man some day

You got mud on yo' face You big disgrace Kickin' your can all over the place Singin'

We will we will rock you We will we will rock you

Buddy you're a young man hard man Shoutin' in the street gonna take on the world some day You got blood on yo' face You big disgrace Wavin' your banner all over the place

친구 자넨 지금 소년이야. 거리에서 소란을 떨면서 놀면서 언젠가는 거물이 될 거라고 하지.

네 얼굴에 진흙이 묻었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온 동네에서 깡통을 차고 돌아다니는 주제에.

소리 질러. 우리는 널 흔들 거야. 우리는 널 흔들 거야.

친구 자넨 이제 젊고 강한 남자야.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언젠가 세상에 도전할 거라고 하지.

네 얼굴은 피투성이야. 부끄러운 줄 알아. 온 동네에서 네 깃발을 휘두르고 다니는 주제에.

 

음악을 하면서도 그는 사랑이 그립다. 그는 이 남자 저 남자를 넘나들면서도 메리가 그립다. 그러던 어느 날 메리가 그를 찾아온다. 그런데 메리의 옆에 훤칠한 남자가 있다. 데이빗이다. 프레디는 그녀의 손가락을 확인한다. 그의 반지가 없다. 그가 양성애자 고백을 했을 때 메리가 반지를 돌려주었으나 다시 끼워준 반지를 메리는 뺀 것이다. 그녀는 “내게 필요한 게 뭔지 알았어.”라고 말한다. 메리가 떠난다. 그는 아프다. 아파하는 그에게 그의 동성 사랑 폴이 “이제 내가 도와줄게. 네가 나를 믿는다면......”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힘든 일들의 연속이지만 그의 천재성은 인정받아 세인들이 그에게 접근한다. 굉장한 조건으로 그에게 솔로로 나설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그는 그걸 거절한다. 그의 진정한 가족은 밴드 멤버들이라며.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다다른다. 밴드 규모가 커지면서 운영비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호화생활을 하려니 어렵다. 결국 그는 밴드에 참여하면서 솔로로 취입을 선언한다. 때문에 그는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을 찍히고 폴과 둘만 남는다. 그러면서 모든 일정을 폴이 관리한다. 메리한테서 전화가 와도 폴은 연결을 안 시킨다. 또한 라이브 에이드란 대형 콘서트에 참여하라는 전 매니저의 제안도 폴은 프레디에게 말하지 않는다. 폴의 관리로 그는 완전 고립당하지만 그는 그걸 모른다.

게다가 그에게 모욕을 당한 동업자가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과 그의 광적이며 방탕한 사생활을 폭로한다. 그러자 기자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그에게 답을 요구한다. 밴드 식구들로부터의 고립, 메리와의 사랑의 두절, 그는 심한 우울감에 빠진다. 이제 마지막 라운드 돌입이다.

 

메리가 찾아온다. 임신한 그녀를 보니 그는 영 기분이 안 좋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니?”라는 물음에 메리는 여러 번 연락을 취했었는데 전화를 안 받았느냐고 오히려 책망한다. 그는 비에 흠뻑 젖는다. 메리가 그에게 말한다. “너는 지금 폴에게 속고 있어. 집으로 돌아와 줘.”라고. 메리를 통해 진실을 알고 난 그는 폴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그를 당장에 해고한다. 해고당한 폴은 방송에 나가서 그를 비난한다. 혼자될까 두려워 숨는 사람이라며 그를 아주 나쁘게 말한다.

다시 혼자가 된 그는 짐 허튼을 찾는다. 찾기가 어렵다. 그는 전 매니저를 찾아간다. 밴드 가족과 화해를 시켜달라고 그는 것이다. 라이브 에이드에 꼭 공연해야겠다며 도와 달라 한다. 밴드 식구들은 화는 나지만 그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 그럼에도 그를 안 받아들일 듯이 그의 애를 먹인다. 그에게 변명할 기회를 준다. 그러자 그는 용서를 빌면서 “우린 가족이니까. 퀸을 해체 못해. 고용인들을 써서 음악을 만들었어. 그런데 그들은 모두 내 의견이 좋다고 할 뿐, 너희들처럼 지적하거나 안 좋다는 사람이 없었어.”라며 다시 퀸을 시작하자고 한다.

그의 라이브 에이드 출연의 간절함, 그건 무료공연이라서 더더욱 그렇다.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 식량을 얻기 위한 모금운동의 일환인 공연, 내로라하는 대가들이 총출연하는 라이브 에이드에 그는 출연하고 싶다. 남을 위한 봉사도 봉사지만 이번은 그의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에이즈 판정을 받은 것이다. 프레디와 밴드 식구들은 용기를 낸다. 자신감을 갖는다. 공연장의 천정을 뚫자! 그런데 거기는 천정이 없어! 뚫을 천정이 없다면 하늘을 뚫자! 프레디의 성대가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그들은 연습에 돌입한다. 그리고 라이브 에이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동적인 드라마 앞에 세계인은 뙤창을 불렀으리라.

 

드디어 라이브 에이드! 프레디는 마치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라도 하듯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이들을 모두 초청한다. 우선 그의 가족, 짐 허튼 그리고 메리 부부, 그의 초청을 받은 그들이 그의 공연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의 대단한 공연에 큰 감동을 받는다. 누구인들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이건 현실일까? 그냥 환상일까? 로 시작하여 동정은 필요 없다고 외치는 아카펠라, 슬픈 발라드풍의 Mama, just killed a man 엄마, 방금 사람을 죽였어. 그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어. 이제 그 사람은 죽었어. 엄마, 인생이 막 시작됐는데 지금 내가 다 내팽개쳐 버렸어, 라며 마치 미친 듯한 소년의 비애를 담아낸다. 마치 한 인생의 일생을 진행하듯 다음엔 오페라처럼 I see a little silhouetto of a man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겁쟁이, 겁쟁이, 네가 감히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다고? 천둥과 번개소리가 난 너무 너무 무서워. Galileo, Galileo, Galileo, Galileo 로.... 저 좀 풀어줘요. 바알제붑이 나를 위해 마귀를 곁에 두었구나. 나를 위해로 이 곡으로 정점을 찍고 하드 록으로 잇는다. So you think you can stone me and spit in my eye? 그래 당신들이 내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 서 날 사랑한다더니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 아,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난 여기서 나갈 거야.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고 말 거야, 그리고 다음엔 발라드로 나가는 듯하고 마지막으로 관객과의 호흡이다. ‘Radio GaGa’다. I'd sit alone and watch your light 난 혼자서 앉아 불빛을 지켜봤어. 청소년기의 내겐 유일한 친구.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라디오에서 들었어. 그리고 이제 그 유명한

‘We are the Champions’이다. 관객과 가수가, 관객과 밴드가 혼연일체가 되는 감동, 완전히 한덩어리가 되게 하는 감동,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도 마치 그 공연에 관객으로 함께하는 듯한 감동을 주는 노래다. I've paid my dues 나는 나의 의무를 다했다. 매순간 나의 형기도 끝났어. 하지만 난 아무 죄도 짓지 않았어. And bad mistakes I've made a few I've had my share of sand kicked in my face But I've come through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And we'll keep on fighting 'til the end We are the champions We are the champions

우린 모두 챔피언이라며, 이제 패자를 위한 시간은 없다, 왜냐고 우리는 모두 세상의 쳄피언이니까Cause we are the champions of the world로 이들의 공연은 끝난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짐 허튼에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용서를 받는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예요.” 실제 인물 프레디 머큐리는 애석하게도 에이즈로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참으로 멋진 영화다. 마지막 ‘라이브 에이드’ 장면만 봐도 좋을 영화다. 굳이 감상평이라면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면 창조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 그의 삶이 그대로 녹아든 음악, 타고난 양성애적 성향으로의 괴로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보헤미안 랩소디 이 곡에는 한 인생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났으나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그럼에도 그러한 편견을 깨려는 노력의 과정,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내고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기에 용감하게 살아갈 것을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곡, 어쩌면 진정한 자유는 이 세상과의 결별임을 예감한 것은 아닐까. 감옥과도 같은 세상에서의 탈출, 형기를 끝낸 죄수와 같은, 완전한 자유를 얻은 듯한, 그래서 감옥에서 석방되는 듯한 심정의 노래,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은 고독하고 서글픈 곳이다.

줄거리에서 이미 보았듯이 그의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기저에는 그의 타고난 재능이 있다. 그에 더불어 그의 음악을 대하는 철학에 있다고 하겠다. 그는 자신이 사회 부적응자인 것은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가 완전히 어떤 규정한 틀에 맞추려는 환경 때문임을 알고 있다. 해서 그는 부적응자를 위한 부적응자의 노래를 지향하려 한다. 누구보다 고독한 그는 자신의 그 마음을 진솔하게 음악에 담아 넣는다.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자신 좋으라고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면 관객도 좋아한다는 것, 그렇지 못한 나는 독자 좋으라고 글을 쓰고, 듣는 이 좋으라고 강의하려 애써야겠지.

 

그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사랑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는 사랑하고 싶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 양성애자이다. 엄밀히 따지면 사람은 누구나 양성애자일 수밖에 없다. 갓난애는 엄마만 상대하다, 어려서는 일단 또래 애들 중 동성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낸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면서 이름만 우정과 애정으로 달라질 뿐 관심 갖기, 친해지고 싶은 욕망으로만 본다면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양성애적 성향은 당연하다. 다만 프레디는 외형적으로 드러나니까 문제일 뿐이다. 철없는 소년으로 살다가 여자의 정점인 퀸으로 살다가 다시 남성의 정점인 킹으로 살다 자유로운 아이로 돌아온다. 이를테면 그의 음악과 인생은 한 남자의 일생과 한 남자의 사랑의 행로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 청년, 한 남자를 사랑하는 중년으로 살다 간다.

다음으로 가족에 대한 개념이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가족과 우연으로 맺은 가족, 어느 쪽이 더 가깝냐는 문제다. 단지 같은 피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란 이름을 갖지만 실제로 가족이란 이름뿐 서로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혈연이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선 이웃보다 못한 것이 가족이니까. 혈연은 아니지만 같은 일로, 같은 정신으로 모인 가족이 때로는 더 끈끈할 수도 있으니까. 혈연적 유대감이 중하냐 정신적인 유대감이 중하냐고 할 때, 물론 이 둘이 합쳐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 정신적 유대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는 탕자처럼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놀기 좋아하고,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는 방탕자, 세상에 나와 온갖 고통을 겪고 배고픔을 경험하고, 외로움과 고독을 엄청 느끼고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환영을 받았던 성서 속의 탕자처럼 그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아버지와 화해한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예요.” 

 

- 최복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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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길게 쓸 수밖에 없네요. 그러니 이 영화로 이삼 일 보세요. 한꺼번에 읽기 어려우면 시간을 두고 읽어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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